보드
이쯤되면 산책이 주는 쓸모는 101가지쯤 되지 않을까? 집 앞의 어느 곳으로 나만의 산책을 만드는 것은 ‘용기와 위로, 용서, 비움’을 위한 최고의 방법일 터, 그럼에도 실천하지 않는 나의 게으름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한 문장이었다.
의도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것,
결국에는 돌아갈 곳이 정해진 산책은
보다 자유롭고 안도할 수 있는 일상의 축제라 여겨지니,
좋은 계절에 나서봐야겠다.
책을 사이에 두면,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의 두 편이 있다.
책과의 교류를 읽는 것으로 채우는 이에게 속한 책과
쓰는 이로 하는 경우의 책은 사뭇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흔히, 쓰는 이는 그 안에 자신을 담는다고 한다. 특히 문학의 경우, 자신이 생각하고 현실화 시키고 싶은 대상을 설정하여 또 다른 나를 탄생 시키는 것이다.
읽는 사람은 그 안에서, 작가가 창조한 대상과 이야기 속에서 나의 서사를 찾게 된다.
어떤 경우에라도 책에서 작가와 독자는 만나게 된다. 책 속의 인물을 매개로 하지만, 어쩌면 같고도 다른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각자의 경험대로, 각자의 감정대로, 그렇게 위로받고 이해 받으며 책을 만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이 생각난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내가 틀렸습니다’로 대체하지 못함을 생각했던 그 시간,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더이상의 다른 가능성은 없다. ]내가 틀렸기에, 사고하고 수정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 틀릴 수도 있지만, 맞을 수도 있는, 따라서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다. 누구의 용서도 칭찬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 현상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 그것뿐이다. 왜냐하면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함과 ‘내가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운명에 맞서 투쟁하고 극복해서 나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 최선일까?
어차피 맞을지 틀릴지 모르는 것을.
틀리 수 있다고 여기면서 겸손하게 열린 마음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필사적여유 8week
친화력은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게 하며,지식을 세대에 세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게 해준다. 또 복합적인 언어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문화와 학습의 기반이 되었으며, 친화력을 갖춘 사람들이 밀도 높게 결집했을 때 뛰어난 기술을 발명해왔다.다른 똑똑한 인류가 번성하지 못할 때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특정한 형태의 협력에 출중했기 때문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인류가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적자생존의 원리가 아니었다?협력하고 서로를 보살피고 서로를 지켜주려한 다정함이었다는 사실.
이 책을 ㅋㄹㄴ시기에 읽었는데 읽으며 이 역병의시대도 곧 지나갈거란 생각을 했었어요.
부작용도 많았지만 백신을 빠른 시일내에 만든것도 인류애였던 듯.#과학책 인데 진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쓴 책이라서 인문사회학책으로도 읽혔던 경험
필사적여유덕분에 이 책을 다시금 꺼내어봅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헤어 #버네사 우즈 #디플롯 #메모먼트
누군가의 서평을 읽고 단상을 적었던 기억이 있는 책이다. 저렇게 생각하고 사소한 것을 지나치지 않으려는 이 책의 주인공 ‘펄롱’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기 전에 먼저 가장 가까운 주변을 돌아보고 이해하는 것이 옳았다. 수녀원의 한 소녀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 그의 아내와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이 있는 자신의 가정 사이에서 왜 그 소녀를 돕는 것에 집중했을까? 그것이 삶에 의미를 가져온다고 생각했을까? 그가 소녀에게 보인 것은 ‘선의’보다는 수녀원에서 이루어진 보다 못한 일들에 대한 ‘정의’이기를 바라본다.
[필사적 여유 – 7주차 필사 : 파친코 1]
선자가 젊음을 그리워 한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선자의 그리움은 무엇일까? 후회일까 아님 자신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사람이 자신 뿐이라 슬픈 것일까. 나는 후자일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후회가 없었고, 순간에 최선을 다했으며, 누가 무엇이라 해도 자신의 신조를 지켰던 그때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사람이 남아있지 않기에 느낀 슬픔이라 생각한다. 선자가 자신의 젊은 날에 후회가 아닌 그리움이 남는 것 또한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선자는 삶에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억하는 것이다. 나의 미래 또한 선자와 같이 아름다움만 남아있기를 희망한다.